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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스타트업 경쟁 상대는 전 세계에 있다
비교의 기준이 세계로 확장되는 시대, 스타트업이 마주한 현실
지난주에는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한 기관투자자와 미팅을 하면서, 지난번에는 한여름에 왔던 터라 "이번에는 날씨가 선선해서 지내기 좋네요"라고 했더니, "10월 말치고는 더워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10월 말인데도 반팔을 입고 다닐 수 있겠다고 느꼈으니, 예전에 비해 확실히 많이 더워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여름의 무더위만 빼면 도쿄는 정말 살기 좋은 도시라는 점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탄다역에서 바라본 이른 아침 하늘도 참 예뻤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밴드에서 기타를 쳤습니다. 홍대에 있는 '드럭'이라는 라이브하우스에도 자주 갔던 기억이 납니다. 크라잉넛이 공연하던 시절입니다. 저희 밴드도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 이동 중에 별생각 없이 유튜브를 스크롤하고 있었는데, 태국의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밴드의 공연 영상이 나왔습니다. 일본 학생 밴드의 영상도 이어서 나왔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의 연주 실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들에 비하면 내 고등학교 시절 기타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구나.'
그런데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비교 대상이 주변 친구들이나 다른 학교 밴드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등학생치고는 꽤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저의 비교 대상은 아주 작은 서클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다릅니다. 유튜브만 켜면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또래들의 연주를 볼 수 있습니다. '잘한다'는 기준이 처음부터 세계 무대에 있는 것입니다.
스타트업도 점점 비슷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보의 흐름은 빨라지고 있고, AI 덕분에 서비스와 제품을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비약적으로 짧아지고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General Translation은 제품의 현지화를 자동화하는 스타트업입니다(제가 투자한 마이크로 VC 포트폴리오도 이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처음부터 미국 시장을 겨냥해 제품을 출시하는 스타트업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 결과, 국경을 초월한 경쟁이 시작되는 시점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변 경쟁사들보다 잘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세계 무대에 던져져, 전 세계 경쟁사들과 비교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타 연주와 달리 스타트업 세계에는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과 정보가 전달되는 시간차가 존재합니다.
어떤 혁신은 며칠 만에 태평양을 건너오지만, 어떤 혁신은 여전히 몇 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건너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산업이나 분야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나마 대응하기 쉽습니다.
미국에는 어떤 스타트업이 있는지, 유럽에서는 어떤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는지 초기 단계부터 파악하고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글로벌 경쟁을 의식해야 한다는 점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적어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비슷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가 다른 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입니다.
동네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전국 무대에 나가 보니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것과 비슷합니다.
개인이라면 상실감 정도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회사의 존폐가 걸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정보가 전달되는 데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잘못된 상대를 벤치마킹할 위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가장 앞서가는 경쟁사를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물간 경쟁사를 벤치마킹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본인은 열심히 따라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목표로 삼은 경쟁사는 이미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제가 밴드 활동을 하던 시절에 유튜브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나름대로 프로 뮤지션을 꿈꾸며 행복하고 즐겁게 음악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전 세계의 뛰어난 고등학생 기타리스트들을 매일 봤다면 과연 같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진짜 경쟁 상대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결국 프로가 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도 조금은 듭니다.
우물 안에 있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지만, 우물 밖을 몰랐기 때문에 더 멀리 가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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