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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그래도, 그 미래를 선택하다
실패할 것을 알아도, 도전하는 것에는 의미가 있을까
지난주는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특정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저희가 출자한 GP와 일정을 함께했는데요. TOKEN, Milken, Kauffman Fellows, 그리고 그 전주의 SuperReturn부터 주말 F1까지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기에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도시 전체가 활기로 가득했습니다.
이번에 처음 먹어본 페라나칸 요리. 수백 년 전 중국계 이주민과 말레이계 문화가 융합되면서 탄생한 문화라고 합니다.
싱가포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영화 'Arrival'을 봤습니다. 벌써 네다섯 번은 본 것 같은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요즘은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이 비행기 안에서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좋아하는 영화를 한 번 더 보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인터스텔라'를 봤습니다. 이 영화 역시 네다섯 번은 본 것 같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 중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 Fully embrace every moment of life’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에게 시간은 우리처럼 과거에서 미래로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비선형적이고, 미래 역시 이미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Dr. Louise도 그들의 언어를 익혀가면서 미래를 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미래가 행복한 일들로만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남편과 헤어지는 것도, 사랑하는 딸을 난치병으로 잃게 되는 것도 그녀는 미리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미래를 선택합니다.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그 과정에 존재하는 행복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생의 매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고, 기쁨과 슬픔까지 모두 받아들이는 것에 의미가 있다, 저는 이 영화가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제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창업도 벤처투자도 불확실성의 덩어리와 같습니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만약 과학이 더욱 발전해 인류도 영화 속 외계인들처럼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회사는 실패한다”, “이 투자는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 수 있다면, 아무도 거기에 도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기대비용’이나 ‘기대수익’이라는 개념조차 의미가 없어지고, 벤처투자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실패할 것을 아는 일 자체를 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창업을 해서 실패하든, 투자를 해서 실패하든,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은 결과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창업’이라고 부를 정도의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10대 때 G마켓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어봤다가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MBA 시절에도 창업 비슷한 것에 도전했지만 역시 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는 즐거운 일도 정말 많았습니다.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경험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좋은 인연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펀드매니저로서의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지금까지의 투자 실적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을 정도의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실패한 투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회사는 분명 성공할 것이다”라고 진심으로 믿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투자했던 순간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펀드를 운용하는 GP도, 스타트업 창업자도 매일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 110%, 때로는 120%의 힘을 쏟으며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도전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경험과 감정, 성장과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은 조금 더 풍요로워집니다. 그리고 각각의 도전에는 실패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도전들이 쌓이면서 사회 전체도 조금씩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설령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기 위해 다시 같은 길을 선택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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