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 VC는 유일하게 아직 ‘관계’가 중요한 상품

왜 VC에서만 유독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할까. 그 의미는 변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동네에서 매년 열리는 Lowrider Parade가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집 앞에 로우라이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설마 벌써 1년이 지난 건가?’ 싶었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마침 이 블로그에서도 딱 1년 전에 Lowrider Parade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새삼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 한 GP·LP 디너에서 ‘GP와 LP의 관계’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관계’가 이토록 자주 언급되는 펀드 비즈니스는 벤처캐피털(VC)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헤지펀드에 투자할 때 GP와의 ‘케미스트리’가 가장 중요한 투자 기준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프라이빗 크레딧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VC에서는 유독 “GP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다면 VC에서 말하는 ‘관계’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GP와 친구가 되는 것일까요. 여러 번 식사를 함께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알고 지낸다는 뜻일까요. 사람마다 정의는 다르겠지만, 저는 크게 ‘신뢰’와 ‘접근성(Access)’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신뢰입니다. 벤처펀드는 한번 투자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헤지펀드의 경우 펀드에 따라 분기별 등 일정한 시점에 환매가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VC 펀드의 운용 기간은 일반적으로 10년 이상이며, 최근에는 12년 이상도 드물지 않습니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으니 그만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LP는 “이 사람에게 10년 이상 내 돈을 맡길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투자 판단, 조직 운영, 정보 공개, 이해상충에 대한 대응까지, 10년이 넘는 운용 기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계약서에 미리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GP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관계란 ‘오래 알고 지냈다’는 뜻이 아니라, ‘오랫동안 돈을 맡길 수 있을 만큼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접근성입니다. VC는 다른 주요 자산군과 비교하면 여전히 젊고 작은 시장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외부에서는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려운 세계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펀드가 정말 좋은 펀드인지, 누가 다음 세대의 톱 GP가 될 것인지, 심지어 어떤 펀드가 지금 자금을 모집하고 있는지조차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알고 있는가’가 큰 가치를 가졌습니다.

좋은 펀드에 투자하려면 좋은 GP를 알아야 합니다. 그 GP를 모른다면, 적어도 그 GP를 아는 사람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VC는 일종의 폐쇄적인 클럽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는 신뢰라기보다는 접근성에 가깝습니다. 더 나아가 GP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과정 자체도 네트워크와 인간관계에 크게 의존해 왔습니다. VC라는 산업 자체가 오랫동안 ‘누구를 알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겨왔고, 이러한 특성이 GP와 LP의 관계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VC에서 말하는 ‘관계’는 단순히 ‘친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알고 있다’, ‘접근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다’는 각각 다른 개념입니다. GP와 몇 번 식사를 했는지,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GP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 사람인지 아는 것입니다. ‘관계가 있다’는 것과 ‘친구다’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러한 역학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VC라는 자산군이 성장하면서 정보량도 크게 늘었습니다. 새로운 GP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도 많아졌습니다. ‘누구를 알고 있는가’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지만, 과거만큼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게 되고 있습니다.

유동성도 마찬가지입니다. LP 세컨더리 시장이 확대되면 ‘12년 동안 그저 기다리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늘어납니다. 물론 상장주식과 같은 수준의 유동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필요할 때 펀드 지분을 매각한다는 선택지는 과거보다 훨씬 현실적인 것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VC에서 관계의 중요성을 뒷받침해 왔던 ‘정보의 비대칭성’과 ‘극단적인 비유동성’이라는 두 가지 전제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VC가 관계의 비즈니스라는 사실 자체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관계가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관계인가입니다. VC 시장이 성숙해질수록 ‘관계’라는 모호한 단어가 의미하는 바 역시 달라질 것입니다. GP와 LP 모두에게 이러한 역학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 과거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eferences:

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