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 대기업과 스타트업 협업의 성공비결은 '유연성'

지난주에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마리화나 냄새가 풍겨올 때가 있는데, “아,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샌프란시스코는 겨울이 되면 확실히 조금 쌀쌀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 특유의 좋은 날씨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기분도 한결 밝아집니다.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즐비한, 제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디스트릭트 발렌시아 스트리트

최근, 전 직장인 리크루트 재직 시절 상사로서 여러 딜을 함께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오카모토상과 오랜만에 근황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헤드라인 벤처에서 활동하고 계신데, 그 자리에서 오카모토상으로부터 ‘벤처 클라이언트(Venture Client)’라는 개념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관련 서적도 소개받아 읽어보았는데,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관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어 매우 시사점이 큰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벤처 클라이언트란 “Buy, don’t invest (투자하지 말고, 구매하라)”라는 문구로 요약되듯, 스타트업에 출자하는 대신 고객의 입장에서 해당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혁신을 도입하자는 사고방식입니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함에 있어, 투자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속 성장 국면에 있는 스타트업의 경우, 자금 조달이 반드시 최우선 과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매출 확대와 고객 실적 확보에 더 큰 관심을 두는 사례도 적지 않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대기업이 고객이 된다는 점의 의미는 매우 큽니다. 이러한 이유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에는 분명 일정한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 방식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업 측면에서 직접 활용하기 어려운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또는 창업자의 자질이나 장기적인 비전과 같은 요소는 단순한 거래 관계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투자라는 형태로 깊이 관여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며, 투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협업의 기회 또한 분명히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투자가 항상 정답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결국 투자든 벤처 클라이언트든, 스타트업과 관계를 맺기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밖에도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M&A)과 같은 선택지도 존재합니다. 기업에 있어 중요한 것은 특정 수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수단을 실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목적에 따라 최적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한 전제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정보와 데이터의 일원화입니다. 벤처 클라이언트를 담당하는 조직, CVC 조직, M&A 조직이 공통의 CRM 등을 활용해 스타트업 관련 정보를 집약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판단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데이터베이스가 분단된 상태로는 선택 가능한 수단이 많더라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용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확보한다는 관점에서 VC펀드에 대한 투자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됩니다. 하나의 펀드가 아닌 다수의 VC 펀드에 출자함으로써 스타트업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출자한 GP를 통해 자사의 소싱 및 실사(due diligence) 역량을 보완·강화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AI의 발전으로 인해 스타트업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그 영향의 폭도 한층 확대되고 있습니다. VC 펀드 투자를 통해 자사의 역량을 보완하는 동시에, 여러 수단을 유기적으로 조합해 보다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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