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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VC의 ‘귀족 게임’은 막을 내리고 있다
벤처캐피털은 더 이상 귀족들의 사교 모임이 아닙니다
저번 주에는 여러 가지 과일을 기르는 지인의 별장에 다녀왔습니다. 복숭아, 토마토, 포도, 무화과 등 다양한 과일이 한창 수확철이었는데요, 오가면서 복숭아나 포도, 무화과는 그 자리에서 바로 따 먹기도 했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 키운 덕분인지 정말 맛있었습니다. 특히 토마토는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과일만으로 이렇게 배가 부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많이 과일을 먹었습니다. 지금 저희 집 베란다 화분에서도 토마토, 상추, 오렌지 등을 기르고 있는데요, 아직 수확해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베란다에서 키우고 있는 토마토
벤처캐피털에 처음 발을 들이는 펀드 출자자(LP)들에게 어려운 질문 중 하나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얼마를 투자해야 하는가?”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대형 펀드라면 관계를 쌓기 위해 보통 $10m~$30m 정도가 필요합니다. 일부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다른 유명 펀드들의 경우 최소 $5m 수준이 기준이 됩니다. 다만, GP와 관계가 쌓이면 그보다 적은 금액으로도 참여가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저희 역시 이름 있는 펀드 몇 곳에 $5m 이하로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신뢰 관계 덕분이었습니다.
5~10년 전만 해도 상황은 훨씬 더 엄격했습니다. 그때의 벤처캐피털은 전형적인 귀족 게임, 즉 “엑세스 게임”이었습니다. LP는 단순히 자금만으로는 부족했고, 반드시 사전에 인맥과 신뢰가 있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자금이 많아도 전화조차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판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일부 펀드들은 최소 투자 기준을 낮추고 새로운 관계에 열려 있습니다. 이는 호의라기보다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이 변화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최근 몇 년간 엑시트가 드물었습니다. IPO와 인수합병이 거의 멈추면서 LP들의 자금이 묶였고, 재투자 여력이 크게 줄었습니다. 과거처럼 기존 투자자만으로는 펀드 결성을 채우기 어려워진 운용사들은 불가피하게 더 작은 금액의 신규 LP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둘째, 펀드 규모 자체가 커졌습니다. 과거 수천억 원 규모였던 펀드가 지금은 수조 원을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의 대형 LP 한두 곳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자금을 메우기 위해 운용사들은 더 많은 출자자를 필요로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개방성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IPO 시장이 다시 열리면 자금은 더 자유롭게 흘러들어올 것이고, 과거의 귀족 게임은 어느 정도 복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철저히 폐쇄적인 ‘클럽’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번 주에 말씀드린 Allocate와 같은 플랫폼들은 소액 투자자들에게 대형 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플랫폼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기업이나 기관 투자자들 역시 저희와 같은 펀드 오브 펀즈를 통해 과거보다 훨씬 수월하게 비교적 유명한 펀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벤처캐피털은 더 이상 귀족들의 사교 모임이 아닙니다. ‘엑세스 게임’은 끝나가고 있으며, 돈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자금이 생태계로 흘러들어가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투자 방식의 변화가 아닙니다. 혁신의 자금줄이 이제 특정 네트워크의 전유물이 아니라, 더 다양하고 글로벌한 투자자들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산업 전체에 건강한 변화의 흐름이 될 것입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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