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VC투자자로 일하는 것은 특권이다

모든 관계에서 겸손과 공감, 존중이 필요

제가 사는 집은 샌프란시스코에 흔히 볼 수 있는 빅토리안 스타일의 3세대 주택입니다. 저희 바로 아래층에는 영국과 미국 커플이 살고 있는데, 그들도 저희 아이들과 또래인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워낙 가까운 거리라 신발도 신을 필요가 없을 정도이고, 첫째 아이들끼리 나이도 비슷해서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남편분은 곧 교수로 취임할 예정인데, 이사를 가지 않고 근처 대학에 자리를 잡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아랫집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최근 몇몇 VC펀드 GP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눈부신 성취, 그리고 자아도취로도 표현이 되는 VC투자 업계에서 다소 낯선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깊이 공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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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다른 주요 투자 자산군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장 주식에 투자할 때는 수익성, 시장 트렌드 등 다양한 정량적 요소를 분석합니다. 부동산은 위치와 시장 사이클, 건물 상태 등을 평가합니다. 물론 이 두 자산군에서도 사람의 역할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폭넓고 덜 개인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반면 벤처캐피털은 매우 인간 중심적입니다. 여기서 투자자들은 주로 창업자, CEO, 즉 초기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투자합니다. 성공 여부는 상당 부분 창업자의 과거 성과와 그들이 미래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에 달려 있습니다. 투자자는 스타트업의 숫자나 자산도 평가를 하지만 결국은 사람 그 자체를 평가하게 됩니다.

바로 이 인간적인 측면 때문에 투자자의 역할은 매우 특별하고, 특권을 지니게 됩니다. 창업자들은 자신의 스타트업에 모든 것을 쏟아붓습니다. 끊임없이 일하며 개인적인 재정 안정성, 때로는 인간관계와 가족까지 희생하며 사업에 전념합니다. 즉, 투자자들은 그런 '사람들'의 잠재력과 열정, 정직성을 평가할 수 있는 특별한 책임과 특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꿈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저는 펀드 오브 펀드 매니저로서 이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저는 창업자를 직접 평가하는 대신,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자본을 운용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을 평가합니다. 이들의 판단력을 이해하고, 트랙레코드를 분석하며, 지속적으로 좋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능력을 예측하는 일을 합니다. 결국 제 업무 역시 개인의 인성과 역량,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책임입니다.

물론 이 일은 매우 힘들고 오랜 시간 집중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저에게 워라밸 따위는 없습니다. 하지만 힘든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특권이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요구되는 헌신의 크기가 저를 포함한 투자자의 역할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 줍니다. 뛰어난 사람들의 노력과 잠재력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평가할 책임을 맡았다는 것은 최소한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헌신을 요구하게 됩니다. 

벤처업계에서의 투자자로서 특권을 인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는 모든 관계에서 겸손과 공감, 존중을 요구합니다. 신속하고 명확한 의사결정, 투명한 소통도 필수적입니다. 저는 항상 제가 평가하는 GP분들의 시간과 노력을 존중하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치열한 경쟁과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다른 사람의 노력을 평가하는 특권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인 약속이어야 합니다. 저부터 이 사실을 잘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주어진 책임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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