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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후속 펀드 투자(리업)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관계보다 중요한 성과
16번가와 미션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 있는 역은 제가 자주 이용하는 Bart 전철역 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솔직히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숙자분들이 많고, 다소 위험해 보이는 분들도 자주 보여서 지날 때마다 조금은 긴장이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동식 경찰 차량이 상시 주차되어 있고, 예전처럼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이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참 반가운 일입니다!

예전에는 바글바글했던 역 입구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저희는 장기적인 파트너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으실 수 있습니다. GP(운용사)들이 이렇게 말할 때, 그 진짜 의미는 한 번 출자한 LP(출자자)들이 이후 펀드에도 계속해서 출자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만난 GP로 부터도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경우 그렇습니다. 특히 대형 기관 LP들은 기존에 출자한 펀드에 별다른 의심 없이 리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탁월한 성과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니까”, “성과가 나쁘지 않았으니까”, “신뢰할 수 있으니까”와 같은 모호한 이유로 투자 결정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는 투자를 결정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LP는 어디까지나 투자자입니다. 투자자의 역할은 가장 좋은 기회를 선별해 자본을 배분하는 것이지, 가장 익숙한 곳에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새로운 GP에게 출자하는 것보다 기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덜 위험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특히 대형 LP일수록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성과가 좋지 않으면 내부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기에, 기존 펀드에 계속 출자하는 쪽이 안전하다고 여겨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성은 업계 전반의 역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벤처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좋은 성과를 냈던 전략이나 네트워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기존 펀드의 과거 성과만을 근거로 리업을 결정하는 것이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습니다. 관계에 기반한 결정보다는, 지금 시점에서 해당 펀드가 여전히 투자 가치가 있는지를 철저히 재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리업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면, 실질적인 잠재력을 지닌 신생 펀드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고, 반대로 성과가 부진한 펀드들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이는 업계 전반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호 펀드에 투자해 놓고 2호 펀드에는 리업하지 않는다면, “처음에 왜 투자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리업하지 않는 것이 마치 과거의 투자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불편함이 리스크 있는 선택보다 낫다고 여겨지는 문화가 지속된다면, 산업 전반의 발전은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인 파트너십은 관계가 아니라 성과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과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관계도 중요하지만, 성과는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생태계가 더욱 건강해지고, 혁신도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습니다.